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접대의 관습 (문단 편집) === [[몽테크리스토 백작]] === 이 작품에도 이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에드몽 당테스]]가 백작의 신분을 가지고 파리 사교계에 나타난 뒤, 원수인 [[페르낭 몽데고|페르낭 드 모르세르]]의 집에서 연 무도회에 참석한다. 이때 [[메르세데스(몽테크리스토 백작)|메르세데스]]는 아들인 [[알베르 드 모르세르|알베르]]를 시켜서 백작에게 음료나 음식을 꾸준히 권했다. 이는 단순히 집주인으로서 손님에게 대접하려 한 게 아니다. 메르세데스는 이미 백작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백작의 복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백작이 음식을 받아들인다면 메르세데스로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손님으로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주인, 즉 페르낭과 메르세데스에게 적대심이 없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중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백작은 끝까지 음식을 거부했다. 메르세데스가 온실에서 함께 산책하겠다는 백작과 단 둘이 있을 때 메르세데스가 직접 온실의 과일을 권유했지만 이 역시 거절하고 오히려 모르세르 가에 대한 적대를 에둘러 표현한다. 메르세데스가 백작의 과거에 대해 묻자, 백작은 '나는 몰타 출신으로 고향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전쟁에 참전하러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니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더라'라고 자신의 과거를 각색해 말해준다. 이 말에 메르세데스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백작님을 괴롭게 한 것에 대해 용서하셨나요?"라고 물으니 백작의 대답은 "'''그녀는''' 용서했습니다." 즉 메르세데스는 용서했지만[* 이 당시 메르세데스는 안 그래도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한 형편에, 약혼자는 악명 높은 감옥에 끌려가 소식도 끊긴 데다 서로 의지하던 예비 시아버지(즉 에드몽의 아버지 루이 당테스)는 병이 들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었고, 그렇게 가족도 친구도 없이 절망에 찬 18개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에드몽이 감옥에 가도록 신고한 장본인인 페르낭이 시치미 뚝 떼고 손을 내밀자 그의 악행을 꿈에도 모르고 결국 그와 결혼한 것. 탈옥 후 이 사연을 옛 이웃 [[가스파르 카드루스]]에게서 들은 에드몽은 매우 씁쓸해하면서도 이해는 했다. (다만 부친의 죽음만은 절대 용서를 못했다. 변장 와중에 분노했을 정도.)] 페르낭을 포함한 자신의 원수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 메르세데스도 총명한 사람이라 이 뜻을 한번에 알아들었다. 결국 메르세데스는 백작의 복수심을 확인하고 절망한다.[* 사실 메르세데스도 자기 남편이 한 짓에 대해서는 복수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복수 대상에 바로 그녀의 아들인 알베르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 아무리 그래도 알베르는 백작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데 페르낭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복수의 대상에 포함되었으니 메르세데스로서도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 운명이 꼬이지만 않았어도 알베르는 에드몽 당테스의 아들이었을 수도 있었다.] 마침 이 부분이 나오는 챕터의 제목이 '빵과 소금'이다. 작중에서도 동양[* 작중에서는 '동양'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 나오는 동양은 동아시아보다는 중동 지역에 가깝다.]의 빵과 소금 풍습을 언급한다. 이 장면 이전에 백작이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도 백작은 (자신의 원수들인 빌포르와 당글라르를 포함한) 손님들에게만 음식을 먹게 하고 자신은 먹지 않았는데, 접대의 관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원수들과는 물 한 모금도 같이 마시고 싶지 않았던 듯.[* 어떤 면에서는 이 역시 접대의 관습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상대에게만 음식을 먹이고 자신은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너희가 내 집에서 밥을 먹은 거지 내가 너희와 함께 식사하며 너희를 대접한 것은 아니다'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것. 이 점은 칭기즈 칸 역시 몽골 통일 후 '주인이 손님을 대접할 때는 손님 앞에서 자신이 내놓은 음료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법령을 반포했을 정도이니 접대의 관습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중에 모종의 사유로 백작에게 의심을 품게 된 빌포르와 당글라르 부인[* 당글라르 부인이 당글라르와 결혼하기 전, 그녀는 빌포르와 불륜 관계로 사생아까지 있었다. 원수들에게 복수할 정보를 수집하던 백작이 이것을 알게 되었고 이 파티에서 그에 관한 말을 슬쩍 흘려 둘을 겁에 질리게 한 것이다.]의 대화에서, 빌포르가 "백작은 정말이지 음식을 한입도 하지 않았소. 누가 보면 그가 우리를 전부 독살하려고 했다고 오해했을 거요."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물론 백작의 복수 계획은 독살로 목숨을 빼앗아 끝내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치밀했지만. 다만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접대의 관습과 같이 전근대로부터 이어져온 규범이 가지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근대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에, 본작에서 묘사되는 '접대의 관습'은 주인공의 이국적이고 신기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에 더 가깝다. 작중 언급처럼 '동양의 신기한 관습'과 '그런 관습을 따르는 신비한 인물인 백작'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접대의 관습에 대한 작중 묘사는, 정말 해당 관습이 유의미한 사회(예를 들어 부족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엉터리로 느껴질 만한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일단 상대방을 초대하거나 상대방에게 초대받았으면 이미 손님-주인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초대는 했지만 밥은 같이 안 먹었다' 같은 핑계로 자신이 접대의 관습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알리바바 이야기의 비열한 악역이 '주는 음식은 먹었지만 소금을 뺀 음식이었으니 빵과 소금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핑계를 대는 것과 비슷한 유치한 속임수다. 접대의 관습을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다면 아예 초대를 거절하거나, ''''지난번에 함께 식사했을 때는 손님과 주인으로 만난 것이니, 나도 너희를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는 본래 내 적이니, 그 자리가 끝나고 내가 너희를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는 쪽이 더 그럴싸할 것이다. 왜냐하면 접대의 관습이란 '''그 자리에서''' 주인과 손님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약속이지 양자간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데 부족사회의 동맹관계도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 한때의 동맹이 이후에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한때 손님으로 방문했던 부족과 이후 적이 되어 맞서 싸운다고 해서 그것이 접대의 관습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접대의 관습에서 가장 멋있고 명예로운 행동으로 여겨질 법한 태도 중 하나가 (예수게이의 일화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너는 본래 우리의 적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손님으로 왔으니 손님으로 대우하겠다", 즉 어제까지 싸워왔고 내일도 싸울 상대라도 손님으로 찾이온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안전을 보장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것인 만큼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그 자리에서 그 관계를 이용해 상대를 직접 해친 것이 아니라면 이는 접대의 관습에 어긋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백작의 복수 방법 자체가 어차피 친구로 위장하여 상대를 속이고 함정에 빠트리는 것인데, 고작 밥 한 끼 먹는 자리에서 같이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입장에서는 당글라르나 페르낭 등이 이것을 문제 삼더라도 충분히 반박할 근거가 있다. 에드몽 당테스가 체포되어 이프성 감옥으로 끌려간 것은 바로 메르세데스와의 약혼식 피로연 자리에서였고, 그를 음해하여 함정에 빠트린 장본인이던 당글라르와 페르낭은 이 자리에 하객으로 참석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에드몽과 껄끄러운 면이 있는 상대였지만 아직 젊고 순진하던 에드몽은 그들의 적의를 눈치채지 못하고 친구로 믿었기에 자신의 가장 기쁜 날에 친구로 잔치에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속마음을 숨기고 이 초대에 응했으니 둘은 분명 에드몽의 손님이다.] 즉 상대를 해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을 숨기고 주인과 손님으로 한 자리에 있는 것 역시 넓게 보아 접대의 관습 위반이라 한다면, 이를 먼저 범한 쪽은 당글라르와 페르낭이다. 그리고 접대의 관습과 같은 상호적 규범이 대부분의 경우 먼저 범한 자의 책임이 훨씬 무겁고, 그에 대한 보복을 가한 자의 책임은 훨씬 가볍다. 결국 작중에서 접대의 관습이 다소 괴상한 형태로 등장한 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전통적인 접대의 관습을 생경하게 느끼게 된 당대(근세 말~근대 초) 유럽의 독자들에게 백작의 이국적이고 신비한 풍모를 연출하려는 목적, 작품 내적으로는 백작이 적을 대하면서 보이는 각오와 의지를 표현하는 장치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